오컴의 면도날로 잘라 본 동서양의 보편논쟁(神觀) 작성일24-04-21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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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컴의 면도날로 잘라 본 동서양의 보편논쟁(神觀)
#보편 #개별 #신관념 #영혼 #윤회
오컴의 면도날(Ockham's Razor)은 흔히 '경제성의 원리' (Principle of economy), 또는 단순성의 원리라고 한다. 14세기 영국의 논리학자이며 프란체스코회 수사였던 오컴의 윌리엄(William of Ockham)의 이름에서 따왔다.
1. "많은 것들을 필요없이 가정해서는 안 된다."
2. "더 적은 수의 논리로 설명이 가능한 경우, 많은 수의 논리를 세우지 말라."
‘다른 것이 다 같다면 단순할수록 좋다’는 것은 상식이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 천문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서기 90~168년)는 ‘가장 단순한 가설로 설명할 수 있으면 그것이 좋은 원리다’라고 말한 바 있고, 중세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를 비롯한 많은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은 ‘더 적은 것을 가지고 할 수 있는데 더 많은 것을 가지고 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는 취지의 말을 많이 했다.
단순성의 원리로 <보편논쟁>을 살펴보자. 개별자를 포괄하는 보편자가 시공을 초월하여 실재하는가, 혹은 보편자는 이름뿐이고 실재하지 않는가? 보편논쟁에서 전자의 입장은 보편실재론이고, 후자는 유명론(唯名論)의 입장이다.
보편실재론은 개별을 포괄하거나 혹은 만들어낸 신, 혹은 이데아, 일자 등이 시공을 초월해서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유명론은 그런 보편은 실재하지 않으며 개념만이 있다는 견해이다.
전자는 유신론이나 서구적 사고방식, 후자는 유물론이나 동양적 사고방식에 가깝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서양이 물질과학이 발달하고, 동양이 정신관념이 발달한 것은 아이러니이다.
사실 동양적 사고방식에서 신과 이데아, 일자 같은 보편자가 개념만 있는 게 아니라, 이 세상의 개별자 안으로 들어온 느낌이다. 그런데 동양적 사유에서 보편자가 개별자 안으로 들어온 것으로 보지만, 여전히 보편자는 이 세상과 동떨어져 초월해있는 듯이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쉬운 예를 들어보겠다. 기독교의 영혼관과 불교의 영혼관을 비교해보면, 동서양의 보편관념이 비슷할 뿐이라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기독교에서는 육체가 죽으면 사후에 영혼이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고 말하고, 불교에서는 그 영혼이 윤회한다고 믿는다. 나는 두 영혼관에서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영혼이 다른 차원이 아닌 이 세상에서 돌고돈다는 불교의 관념이 기독교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육체와 분리된 실체를 인정한다는 관점에선 별반 다를 게 없다.
왜 육체와 분리된 영혼이라는 실체를 인정해야만 되는가? 굳이 영혼을 말해야 종교적이고 신성해지는가? 요가, 기공, 탄트라, 밀교 등 대부분의 수행 전통이나 현대의 수련계에서도 영혼이나 다양한 층차의 도계나 선계를 전제로 하고 있다. 하나님이나 신이라는 가공의 개념을 저차원적인 맹신이라고 비난하면서도, 정작 자신들도 몸과 세상과 분리된 새로운 관념에 빠져있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 보면 어려운 단어나 추상적 개념을 구사하여 상대편이 이해하기 어렵게 말하고 쓰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왜 그렇게 어렵게 말을 하고 글을 쓸까? 아마도 다음 이유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넷째, 단순히 혹은 깊은 사색의 결과로 자기 위로나 문제의 도피처를 만들고자 하는 나약한 본능 혹은 끈질긴 의도 때문이다.
다섯째, 가공의 상품을 만들어 장사하려는 영악한 속셈이거나, 가끔은 우는 아이를 달래려는 선한 의도도 있다.
영혼, 내세, 윤회, 도계 등의 종교인들이나 수련인들이 갖는 추상적 개념들은 위 네 가지가 섞여있는 듯이 보인다. 많은 경우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해묵은 관념들과 경전들의 통념과 권위에서 못 벗어난 탓이다.
여기서 오컴의 면도날로 필요하지 않은 가설을 잘라내 버리려고 한다. 가설을 만들고 그 가설을 설명하려는 가설들을 자꾸 만들어내려 하니, 문제가 복잡해지고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개별과 보편은 같은 것이다. 보편이 개별로 다양하게 나투고, 다양하게 나툰 개별은 본래 하나이다. 보편과 개별은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로 붙어 하늘하늘 춤추고 있을 뿐이다.“
영혼이 보이지 않는 몸이고, 몸은 보이는 영혼이다.
삶과 죽음이 하나로 짝을 이루어 이미 영원을 이루고 있는데, 또 다른 영원한 세계, 즉 천국과 지옥, 도계 등을 가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미 만물이 생기고 사라지며 끊임없이 돌고 도는 윤회를 거듭하고 있는데, 또 다른 영혼이 돌고 있다는 영혼 윤회설을 불필요하게 가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식물과 광물은 윤회하지 않는가? 인간만이 불멸의 영혼이 존재하여 윤회한다고 하니, 얼마나 인간 위주의 지독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가?
한편으로는 오컴의 면도날의 부작용을 염려하여, 임마뉴엘 칸트는 다양성을 지나치게 줄이지 말라고 지적했다. 한때 필요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쓸모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편논쟁에서 개별이 보편이며, 보편이 개별이라는 관점은 단순하지만 다양성을 잘라내지는 않는다. 이 세계와 몸 안에서 모든 설명이 가능하고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관점은 지금 여기에서 문제의 원인과 해결점을 근본적으로 찾게 한다! 다른 가정을 상정한다면 문제의 원인과 해결을 다른 존재와 저 세상으로 돌리게 될 뿐이다.
하지만 모든 전통과 문화의 다양한 관념과 믿음을 존중하고 싶다. 다만 그 믿음대로 실천하기 바라며, 다른 사람의 생각도 존중해주길 바란다. 그러면 최소한 싸움이나 전쟁은 줄고 다양성의 꽃들이 활짝 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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