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의 일관성이 없는 윤회설의 허구 1편 작성일24-09-02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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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현정(破邪顯正)6.
논리의 일관성이 없는 윤회설의 허구 1편
”억조창생의 얽히고설킨 실타래로 엮여 한 개체로
내가 탄생했으므로, 전우주가 나의 전생이요,
내가 흩어져 억조창생을 만드는 먼지가 되니
전우주가 나의 내생일 뿐!“
이 논리보다 더 과학적이고 일관성 있는 견해가 있을 수 있을까?
나는 공부와 수행을 많이 한 불교도인들과 수행자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추앙하는 소위 각자와 선지식들이 허구의 윤회설을 신봉하거나 주장하는 것에 대해 심히 우려스럽다. 이 시대의 부처로까지 추앙받고 있는 성철 스님까지 윤회설을 장황하게 논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
그들이 윤회설을 신봉하는 이유는 몇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1. 부처에 대한 오해와 여기서 비롯된 유명한 고승들과 논사들의 윤회설 신봉과 이론 정립
2. 이에 따라 별다른 의심없이 형성된 대중들의 고정관념과 습관적 맹신. 이런 맹신은 인과응보적 삶의 현상을 설명하고, 죽음의 유한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증폭되었을 것이다.
3. 윤회설을 뒷받침하는 체험적 근거, 즉 전생 퇴행과 기억과 같은 증거들. 티베트의 달라이라마 환생제도 같은 것은 윤회설을 은연중에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인류의 잘못된 고정관념이 고질적으로 이어져 내려오거나 팽배한 것은 비일비재하거나, 오히려 진리인양 둔갑되어 신봉되고 있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니 이에 대해서는 별도로 언급하지 않고, 세 번째 윤회설의 근거가 되는 전생 체험의 실체를 밝히 드러내고자 한다.
이런 시도는 특정 종교인 불교를 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바른 견해를 드러내어 좀더 많은 사람들이 미망과 허구에서 깨어나 실상의 참된 삶을 살도록 돕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 주장에 대해 합리적, 체험적 반론은 얼마든지 받아들이나 단순히 맹신이나 완력에 의한 반대는 정중히 사양한다.
자, 윤회설의 체험적 주요 근거인 <전생 기억>을 살펴보자. 쉽게 말해서 명상상태나 혹은 체면에 빠진 무의식상태에서 자신의 전생을 보거나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신의 전생을 얘기한 흔적들을 조사해보면, 그 사람 말대로 그 옛적의 흔적이나 사건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근거를 제시한다. 또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깊은 체면상태에서 자신 전생으로 생각되는, 전혀 알지 못하는 고대의 다른 나라 언어를 구사했다는 등이다.
달라이라마의 환생제도가 가장 대표적이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달라이라마가 죽으면 그의 영혼이 다시 태어나 새로운 달라이라마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여기서 달라이라마의 환생을 찾기 위한 과정은 매우 신중하게 이뤄지는데, 아이가 환생인지 확인하는 절차로는 특별한 물건을 선택하거나, 달라이라마의 이전 생의 특징이나 습관을 재현하는 것이 포함된다.
이처럼 예부터 전해져오는 전생 이야기나 명상이나 최면에 의한 전생 기억을 들어 윤회설을 강력하게 주장하곤 한다. 하지만 조금만 반추해보면 전생 기억이 얼마나 윤회설의 허무맹랑한 근거인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영매나 무당이 죽은 사람을 흉내내거나 그 사람의 정보를 알아내는 사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경우 그 죽은 사람이 영매나 무당의 전생이라 할 수 있을까?
무슨 뜻인가 하면 과거의 정보는 우주 어디(아카식 레코드라고도 부름)에나 혹은 모든 사람의 세포나 의식 속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과거 어떤 인물의 기록물들이 남아있으면, 그 기록물을 보아 그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한 것과 같다. 우리가 부처나 예수, 소크라테스에 대해 아는 체하는 것은 바로 그들의 기록물 때문이다.
이처럼 과거나 현재의 모든 정보는 어디에나 존재하는데, 그것과 접촉하는 능력의 문제일 뿐이다. 즉, 과거의 기록물을 볼 수 있는 사람이면 그 주인공에 대해 알 수 있지만, 그 기록물에 접근하지 못하면 모르는 것과 같다.
전생 퇴행에 의한 기억은 이토록 단순한 사실일 뿐이다. 전생 기억은 무의식 상태에 빠져 그가 접촉하는 특정 정보라는 뜻이다. 무의식 상태에서 무의식세계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마주치는 정보일 수 있고, 아니면 그 자신이 의도한 특정 정보로 더욱 접근할 수도 있다. 비유하자면 도서관에 가서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책이거나, 자신이 의도하여 찾는 책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로 자신의 전생이 왕이나 공주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특별히 많은 것이다. 무의식 중에 자신이 특별히 원하는 정보로 접근하기도 하고, 간절히 원하는 이미지를 환상으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참으로 어이없지 않은가? 자신의 특정한 전생을 보는 게 아니라 수많은 과거의 정보에서 얻거나 왜곡하는 것이 전생 기억의 실상이다. 그 정보는 누구나 꺼내볼 수 있는 인류 공동의 자료일 뿐이다. 무당이나 영매가 어떤 개인의 어린 시절 정보를 알아내는 것만 보아도 나의 주장이 더욱 타당하다는 진실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나의 이런 논리는 불교의 이론과도 통한다. 일중일체(一中一切), 일체중일(一切中一). 하나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가 하나이다. 티끌 속에 우주가 있고, 순간 속에 영원이 있다. 내 속에 우주가 들어있는데, 인간이 무한한 능력을 개발하면 무슨 정보인들 끄집어낼 수 없을까?
무엇이 윤회하는가?
불교에서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식(六識)보다 깊은 칠식(七識)인 말라식(末那識)과 팔식(八識)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이 있다고 한다. 말라식(末那識)은 아뢰야식에서 파생된 잠재의식으로, 자아(我)에 대한 집착을 일으키는 근원적인 작용을 한다.
아뢰야식은 "저장된 식(藏識)"이라는 의미로, 모든 경험과 행위의 결과로 생긴 업(業)과 씨앗(種子)이 저장되는 무의식의 근원적인 층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존재의 근본이 되는 의식으로, 개인의 모든 경험과 기억, 그리고 과거의 업이 이 아뢰야식에 축적된다고 한다.
바로 윤회설 논사들이 말하는 윤회의 주체는 이 팔식(八識)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이다. 하지만 남아 유전하는 것은 팔식뿐만 아니라 육식, 칠식의 정보 모두이다. 이 정보들은 오래도록 잘 보존되는 것도 있고, 사라지거나 뒤섞여 변형되는 것들도 있다고 봐야 한다. 유적이나 물질적 정보들이 잘 보존되는 게 있는 반면, 사라지거나 변형되어 다른 유형으로 나타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우주의 법칙이라면 어디에나 동일하게 적용되므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을 통해 볼 수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테면 천인상응(天人相應)의 원리인데, 인간이 소우주이므로 인간을 잘 알면 우주도 그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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