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명상-➀] 내 안의 절대자유와 행복을 찾아서 작성일20-10-22 14:56
페이지 정보
작성자 ㅣ타오러브 조회수 ㅣ8,781회관련링크
본문
[자유명상-➀]
내 안의 절대자유와 행복을 찾아서
오늘의 주제는 명상입니다.
그 중에서도 자유명상!
누구나 자기 속에 있는 절대자유와 행복을 찾고 싶어할 텐데요.
오늘은 명상을 통해 어떻게 행복과 자유를 얻을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노래 한 곡 들어보겠습니다.
가사를 보니 모든 건 나! 나 때문이라고 하네요. 맞습니다. ‘나’가 누군지를 알면 궁극적인 삶의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대학생 2학년 때부터 ‘나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가졌습니다. 나를 찾아다니는 여행의 시작이라고나 할까요? 막연하고 큰 질문이었지만, 큰 질문일수록 크게 성취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도 말하죠.
“구하면 얻을 것이라,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갖는 모든 의문은 반드시 해답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체 ‘나’란 무엇일까요?
어떤 존재일까요?
나는..., 누구일까요?
지난 30년간 ‘나’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보니, 지금은 어렴풋이 뭔가 보이는 듯 합니다. 나에 대한 해답이 ‘자신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됐죠.
제가 대학교 2학년이던 시절, 크리슈나무르티가 쓴 <자기로부터의 혁명>이 상당히 인기였습니다.
책의 서문에는 이런 글귀가 나옵니다.
“진리의 열쇠는 자신 안에 있으며 자기응시를 통한 자기인식 속에서만이 시간에 속하지 않는 불변의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이거다!’
‘이 길이다!’
절로 무릎을 칠 만큼 강한 확신에 휩싸였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작이었습니다. 문학, 철학, 종교 등 모든 학문을 섭렵하며 내면의 탐구를 시작한 것은.
당시의 동서양 성자들의 책을 읽고 공부하며 10여 년간 치열하게 공부했습니다. 깨달은 내용은 번역서를 내거나 직접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하나깨닫기>, <자유명상>, <나 자신만큼 나를 괴롭히는 이는 없습니다> 등)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의 깨달음은 머리로 아는 수준이었고, 깊이 체화시키진 못했습니다.
많은 독서와 연구 및 묵상으로 저는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삶이 괴로운 이유가 ‘여러 가지 생각’ 때문이라는 걸. 불교에서는 번뇌라는 말을 쓰죠. 일상에서는 잡생각이라 하고요.
근본적으로 ‘나’라는 의식, 즉 다른 사람과 분리하는 의식으로 모든 망상이나 번뇌가 옵니다. 모두가 망상 속에 살고 있죠. 실제가 아닌데 마치 실제인 양 집착하고 있습니다. 붙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나를 ‘확장’시키는 것입니다. 나를 갈고 닦아 ‘나’를 확장시키고 집중된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이를 명상이 아닌 ‘멍상’이라 부릅니다. 흔히 멍 때린다고도 하는 어딘가에 집중하는 의식을 말하죠. 대다수의 사람은 이 멍상을 하면서 ‘명상’을 한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멍상은 하나의 집중된 의식일 뿐 명상과는 다릅니다. ‘나’가 확장돼 있지만, 여전히 ‘나’라는 굴레에 갇혀 있죠.
멍상에서 명상으로 나아가려면 ‘나’라는 의식을 초월해야 합니다. 마음이 없는 상태가 진짜 명상입니다. 그리고 이 명상(무아, 무념, 초의식) 단계에서 그칠 게 아니라 자유명상까지 구현해야 합니다.
그럼 자유명상은 무엇일까요?
특정한 공간이나 시간을 벗어나는 생활 명상입니다.
홀로 명상할 때는 하나의식이나 무념 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허나 실천이 중요하겠죠. 깨달은 참나의식을 현실 속에서도 실천하는 단계가 최종적인 자유명상이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망상에서 멍상으로, 멍상에서 명상으로, 명상에서 자유명상으로!
순간순간의 삶에서 순간순간의 삶을 체험하고, 행복과 지복을 느끼도록 연습하는 명상. 이것이 자유명상입니다. 궁극적으로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유인이 되는 것이죠. 자유명상의 최종 목표이자 지향점입니다.
자, 그러면 다음 편에서 자유명상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2부에서 계속)
*본 포스팅은 <자유명상> 강좌의 내용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